얼마 전 CBS '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에 보냈던 사연이 방송되었다.
2024년 7월에 이어 두번째다.
<봄>
대학 시절,
전공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죽 하다 컴퓨터를 공부하기 위해 졸업 후 전문교육기관에서 6개월 교육과정을 다녔습니다.
과정을 마치긴 했지만 비전공자가 컴퓨터쪽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회사들을 두드렸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동기들도 하나 둘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취업 못한 동기들끼리 모여 소주 한 잔으로 쓰라린 속을 달래며,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여기저기 계속 두드렸고 마침내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 드디어 꽃 피는 봄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첫 직장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 클레멘티 - Piano Sonatine No.3 in C Major Op.36 I. Spritoso
<여름>
몇 년 뒤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아직 전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진 회사가 아니다 보니 해야 할 일이 그야말로 산더미였습니다.
매일이 야근이었고 수시로 밤을 새워야 했죠.
사무실은 중앙에서 제어하는 냉방 시스템이었는데 저녁 6시가 되면 냉방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지하에 있었던 사무실은 창문 하나 없었고 문을 열어놔도 공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습니다.
야근을 해야만 하는 저는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이 다 퇴근한 뒤 사무실에 있는 선풍기를 모두 가져다 틀고 속옷 하나만 입고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해 94년 여름은 정말로 더웠습니다.
** 헨델 - Organ Concerto No. 6 in B-Flat Major, Op. 4, No. 6, HWV 294 I. Andante Allegro
<가을>
다시 한번 이직을 결심하고 아는 분을 통해 새로운 직장을 찾았고 입사일자까지 잡았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했는데 고객사의 조건이 저를 프로젝트 매니저로 넣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사직서도 제출했고 새 직장 출근일자까지 정해져서 불가하다고 전달했지만 고객사로부터 돌아온 답은 '그럼 프로젝트를 취소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몇차례 부서장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지인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외부에서 데려온 개발자들이 전혀 통제가 안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직접 개발하기로 맘 먹고 외부 개발자들을 모두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요청해 새로 한 명을 보충하고 철야에 들어갔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을 새고 그 다음날 저녁에 퇴근하는 1박 2일 근무를 한 달 이상 하면서 몇 달간 지연됐던 업무를 원래 일정으로 돌려놨습니다.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원래 옮기기로 했던 회사와 다시 연결이 되어 그해 가을 무사히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 바흐 - Oboe Concerto in G minor, BWV 1056 II. Largo </p?
<겨울>
다니던 회사가 합병되며 어쩔 수 없이 퇴사하게 된 그해의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거기에 여러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친구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치즈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겨울에 파이프가 얼어서 우유 공급이 안되면 새벽에 일어나 언 파이프를 녹여야 했고, 역시나 얼어버린 하수 파이프도 임시로 돌려서 처리해야 했습니다.
치즈 만드는 곳은 40도 가까운 온도에 습도는 거의 100%였는데 두건, 마스크, 긴 장화, 실리콘 앞치마, 목장갑, 니트릴 장갑까지 복장을 다 갖추고 들어가면 한 겨울에도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온 몸에 땀 범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보낸 2년여의 생활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는데, 일과 직장,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죠.
이후 원래의 일로 복귀했고 새로운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준 동력이 됐습니다.
** 페르골레지 - Stabat Mater I. Stabat Mater Dolor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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